2013년 8월 15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와 시온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안상홍증인회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언약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새언약 안식일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성경을 보면서도 새언약안식일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상당히 안타까움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증거되어 있는 새언약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 증인회

 ♣ 하나님의교회와 시온 ♣




2000년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세우신 교회 이름은 하나님의교회입니다(고전 1장 2절, 11장 22절, 갈 1장 13절). 하나님의교회는 시온이라고도 불립니다(히 12장 22절, 계 14장 1절). 시온이 어떤 곳인지 알면 하나님의교회를 왜 시온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산 이름이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법궤를 안치하면서부터 시온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왕상 8장 1절). 그러한 시온과 하나님의교회를 동일시해서 부르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다윗왕과 예수님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교회 ♣ 다윗왕과 예수님

예수님은 예언적 다윗왕으로 세상에 임하셨습니다(사 9장 6~7절).

 눅 1장 31~32절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구약의 많은 인물들 중 다윗왕이 예수님을 표상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시대 다윗왕의 행적은 신약시대 예수님의 행적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다윗은 시온을 건설하여 시온에서 통치한 최초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온성은 다윗 성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처럼 다윗과 시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삼하 5장 7~10절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예수님이 예언적 다윗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시온을 건설하시고, 시온에서 백성을 통치하는 왕이 되실 것을 의미합니다.예수님께서 건설하시고 다스릴 시온은 육적 시온이 아닌 영적 시온입니다.영적 시온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하시는 처소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곳입니다.

 시 132편 13~14절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시 133편 3절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영생은 예수님께서 오셔야 허락될 축복입니다(요 10장 10절). 그 영원한 생명을 시온에서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영적 시온을 세우실 것을 알려주는 예언입니다. 따라서 신약시대에 하나님을 만나고 영생의 축복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죄 사함의 축복이 있는 영적 시온은 절기를 지키는 곳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사 33장 20~24절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 성을 보라


여기서 말하는 시온은 시편의 예언과 동일하게, 장차 다윗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거하시며 통치하실 영적 시온을 가리킵니다. 시온을 가리켜 절기 지키는 곳이라고 한 것은 다윗왕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교회를 세우실 것을 뜻합니다.그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교회입니다.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새 언약의 절기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 영생, 성령, 생명수 등 성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축복들을 새 언약의 절기를 통해 허락하셨습니다. 영적 다윗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절기 지키는 영적 시온을 건설하신 것입니다. 이 영적 시온이 바로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입니다(고전 1장 2절, 11장 22절, 갈 1장 13절).시온을 빼고 하나님의교회를 논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가 어떤 곳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시온을 언급하면서도 새 언약의 절기를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않을까요? 그 이유는 영적 농사로 비유된 그리스도의 복음사업을 훼방하기 위해 마귀가 세상에 가라지 즉 불법을 퍼트렸기 때문입니다.


마 13장 25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단 7장 25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

 안타깝게도 위 예언들은 성취되었고, 그로 인해 시온은 무너지고 황폐해졌습니다(사 51장 3절). 아무도 영생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훼방의 역사까지도 이미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다시 다윗왕으로 세상에 임하셔서 시온을 재건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눅 18장 8절, 요 10장 16절, 시 102편 16절, 겔 37장 24절).


미 4장 1~2절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성경은 말일에 재건될 시온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몰려와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을 따라, 하나님께서 친히 거하시고 통치하시며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시온이 이 시대에 회복되었습니다.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오셔서 절기 지키는 시온 곧 하나님의교회를 다시 세워주신 것입니다.새언약 절기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는 사는 법인 하나님의 절기를 지켜 구원의 축복을 받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 ♠∴♠ 재앙의 이유가 있다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교회는 이천년전 예수님께서 남겨주신 새언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목숨처럼 여기며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를 통하여 새언약을 지키시고 구원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 증인회

 하나님의교회 ♠∴♠ 재앙의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수많은 재앙과 위험이 항상 우리 앞에 노출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환경파괴가 심각합니다.예언을 믿는 하나님의교회는 나날이 심각해져가는 재앙과 환경문제의 파괴가 단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황폐시켰고 환경 파괴로 인한 해악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이러한 해악에 대해 수많은 환경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2007년 발표된 유엔의 지구환경 보고서는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서 2050년까지 50%까지 줄이지 못하면 지구 기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2010년 5월 제3차 세계 생물다양성 전망 보고서에서도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동, 식물종이 사라지는 비율이 이전보다 1000배나 빨라졌고, 생태계가 회복 불능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경고는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인류를 돌이켜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함입니다.멈추지 않는 환경파괴로 인해 환경을 보호하고자 지금 즉시 행동해야 한다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긴박하고 간절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아무리 경고해도 긴급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경고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환경 기준에 맞추면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환경을 파괴하여 선진국이 된 전철을 밟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자 하는 개발 국가들. 이들은 환경 보호론자들의 경고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사람들로 매도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잘 생각해보십시오.환경 보호론자들의 경고가 환경재앙을 부르는 것일까요? 아닙니다.환경 파괴가 환경재앙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재앙을 초래한 자들이 오히려 재앙을 경고하는 선지자를 핍박한 역사들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항상 재앙에 앞서 경고하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예레미야 28:8)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장차 다가올 바벨론의 침략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깨뜨린 죄악으로 인함이었습니다.오늘날 하나님의교회 성도들도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일을 합니다.하나님의교회는 멸망과 재앙속에서 구원의 기별을 간절히 전하는 바입니다.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예레미야 16:10~11)

 그러나 이스라엘은 죄악을 회개하기는커녕 재앙을 경고한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재앙의 이유가 예레미야의 경고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교회가 전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재앙과 심판이 다가온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며 (이사야 24:5~6)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앙이 임하기 전 회개하여 신속히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로 도피하라는 구원의 기별을 전하고 있습니다.


 환경 재앙은 경고하는 과학자들이 초래한 것이 아닙니다.바벨론의 침략도 예레미야의 경고 때문이 아닙니다.마지막 재앙도 재앙의 경고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치도 않고 회개치도 않으면서 경고와 구원의 기별까지 훼방하는 죄악이 초래하는 것입니다.그러니 하나님의교회가 전하는 구원의 기별인 새언약의 기쁜 소식을 결단코 가벼이 여겨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2013년 8월 8일 목요일

오늘날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우는 이유(하나님의교회/안증회)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는 이천년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언약 절기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새언약절기들을 세워주셨을 때에는 분명히 우리들이 지키게 하기 위해서 새언약을 세워주신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우리들을 구원하식 위하여 이 땅에 임하신 안상홍님을 믿고 있습니다.자녀들은 안상홍님을 증거하기 때문에 안증회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대교회에는 없던 십자가

오늘날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우는 이유는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결코 그리스도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에게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요, 저주받은 나무(갈 3장 13절)였던 십자가는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유입되었습니다. 로마교회의 지도자들이 이교도들을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받아들인 이교의 사상과 상징물 안에 십자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에 착안, 십자가를 보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럴 듯한 논리를 내세우며 십자가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면 십자가가 로마 콘스탄틴 황제 시대부터 공식적인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교회 안에 세워지게 된 것이 A.D. 431년부터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수백 년 동안 교회 내에 십자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우상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신앙의 대상물로 삼거나 그것들을 섬기고 숭배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출 20장 4~5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시 135편 15~18절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형상에 불과합니다. 생명력이나 호흡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 신성이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미련하고 우둔한 행위입니까? 십자가 역시 나무나 은금으로 만든 하나의 형상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놋뱀 숭배의 역사를 통한 교훈

구약의 역사 속에 십자가를 섬기는 것이 우상 숭배임을 깨우쳐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민 21장 4~9절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험난한 광야의 길을 걷게 되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불뱀에 물려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다급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청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본 백성들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놋뱀이 자신들을 살려준 것으로 착각해 이후 놋뱀을 섬기기에 이르렀고, 그들의 놋뱀 숭배는 히스기야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왕하 18장 3~4절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느후스단은 ‘놋조각’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서 우상을 모두 타파할 때까지 장장 8백년 동안이나 놋뱀을 섬겼습니다. 
놋뱀 사건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원의 역사를 예표합니다. 

요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봄으로 살게 되었던 것같이 우리도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이 십자가가 아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입니다. 놋조각에 불과한 놋뱀처럼 십자가도 나무 조각에 불과한 우상일 뿐 어떠한 구원의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피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놋뱀을 섬겼듯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십자가 자체를 중시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벧전 1장 18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