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8일 목요일

오늘날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우는 이유(하나님의교회/안증회)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는 이천년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언약 절기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새언약절기들을 세워주셨을 때에는 분명히 우리들이 지키게 하기 위해서 새언약을 세워주신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우리들을 구원하식 위하여 이 땅에 임하신 안상홍님을 믿고 있습니다.자녀들은 안상홍님을 증거하기 때문에 안증회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대교회에는 없던 십자가

오늘날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우는 이유는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결코 그리스도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에게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요, 저주받은 나무(갈 3장 13절)였던 십자가는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유입되었습니다. 로마교회의 지도자들이 이교도들을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받아들인 이교의 사상과 상징물 안에 십자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에 착안, 십자가를 보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럴 듯한 논리를 내세우며 십자가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면 십자가가 로마 콘스탄틴 황제 시대부터 공식적인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교회 안에 세워지게 된 것이 A.D. 431년부터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수백 년 동안 교회 내에 십자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우상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신앙의 대상물로 삼거나 그것들을 섬기고 숭배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출 20장 4~5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시 135편 15~18절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형상에 불과합니다. 생명력이나 호흡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 신성이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미련하고 우둔한 행위입니까? 십자가 역시 나무나 은금으로 만든 하나의 형상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놋뱀 숭배의 역사를 통한 교훈

구약의 역사 속에 십자가를 섬기는 것이 우상 숭배임을 깨우쳐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민 21장 4~9절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험난한 광야의 길을 걷게 되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불뱀에 물려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다급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청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본 백성들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놋뱀이 자신들을 살려준 것으로 착각해 이후 놋뱀을 섬기기에 이르렀고, 그들의 놋뱀 숭배는 히스기야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왕하 18장 3~4절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느후스단은 ‘놋조각’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서 우상을 모두 타파할 때까지 장장 8백년 동안이나 놋뱀을 섬겼습니다. 
놋뱀 사건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원의 역사를 예표합니다. 

요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봄으로 살게 되었던 것같이 우리도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이 십자가가 아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입니다. 놋조각에 불과한 놋뱀처럼 십자가도 나무 조각에 불과한 우상일 뿐 어떠한 구원의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피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놋뱀을 섬겼듯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십자가 자체를 중시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벧전 1장 18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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