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성대한 축제일로 지키는 오늘날의 교회들.
그 가운데 하나님의교회(안증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습니다.
단지 기념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교회안증회)는 크리스마스를 지켜선 안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성대히 거행되는 크리스마스를 왜 하나님의교회(안증회)에서는 지켜선 안된다고 하는지??
다음은 패스티브의 <역사의 두 얼굴> 이라는 글입니다.
사람이 기록한 역사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십자군 전쟁은 천주교와 이슬람교 간에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이 역사는 대개 천주교의 편에 의해 쓰여졌다.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한 성전(聖戰)’이었지만,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외세의 침략에 대한 방어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는 천주교가 십자군을 결성할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이유에 대해
“성지를 회복하는 일은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역사를 읽은 자는, 특히 천주교인들은 십자군 편에 서서
십자군 전쟁이 성전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을 심산이 크다.
역사는 이렇듯 누구의 관점에서 쓰였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기록 또한 일본과 한국의 관점은 판이하게 다르다.
강점의 역사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의 번영을 위한 ‘진출’이라는 전혀 다른 옷감으로 짜깁기하고 있다.
강점기 때의 쌀 ‘수탈’의 역사를 일본은 ‘수출’로 기록하고 있다.
또, 의병 ‘학살’에 대한 만행을 일본은 ‘토벌’로 표현하고 있다. 한일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건 이 역사에 대해서는 목격자와 증인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조상들의 증언 덕분에 우리는 전혀 다른 관점의 두 역사의 기록을 접하면서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통찰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만을 고집하며 한국을 얕잡아보고 반대한다. 이렇듯 역사는 기록한 자의 편에 선 사람들의 마음에 오롯이 뿌리를 내려 고정관념으로 자리잡는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 자세히 읽어 보라.
로마의 축제요, 태양신의 제삿날인데 그날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렷다….
사실을 기록하였으되 해석이 이상하다.
만약 이 역사의 기록을 보며 크리스마스가 면면히 이어져온 기독교의 문화,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단 한 글자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사도 바울이 이 역사를 읽는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일찍이 그가 했던 말을 다시 하게 되리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하고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구원을 바라며 그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
진정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바란다면 교회 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짜 얼굴을 가려낼 혜안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혜안이 없다면 역사는 제쳐두고 성경만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기록한 역사처럼
거짓이 없으며 100%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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